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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이야기

우리가 몰랐던 대한민국 희망기업 - 강소기업



[① 한세실업] 아메리카에 디자인을 입혔다

미국인 3분의 1이 선택한 '이 옷의 비밀'

 

                                                        

 

불황의 골이 깊어지면서 가계와 기업 모두 힘든 시기를 맞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세계 시장을 평정해 가는 '알짜 기업'들도 많습니다. 우리 산업을 이끌고 가는 이런 '숨은 강자(强者)' 기업들을 발굴, 시리즈로 소개합니다. 어려움을 뚫고 약진하는 이들이 우리 경제에 '희망의 불빛'이 됐으면 합니다.

"미국 사람 3명 중 1명은 우리 회사 옷을 입고 다닙니다."

그 주인공은 국내에서 이름마저 낯선 한세실업. 이 회사가 지난해 미국에 수출한 의류는 모두 1억4000만장. 미국 인구가 약 3억500만명임을 감안하면, 3명 중 1명이라는 얘기가 농담이 아니다.

그러나 한세실업은 정작 국내에서는 옷을 한 벌도 팔지 않는다. 국내 홍보나 마케팅을 하지 않아 일반인에게는 생소할 수밖에 없다. 생산제품 모두를 월마트타겟 등 세계적인 대형마트에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방식으로 수출한다. 나이키, , 아메리칸이글, 애버크롬비앤피치 등 유명 미국 의류회사들도 한세실업에 옷을 주문한다.

"나이키·갭도 우리가 만든다"

26일 낮 서울 여의도 한세실업 본사에는 디자이너 팀장인 양은순(여·35)씨가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 여러 모양의 티셔츠를 그리고 있었다. 그가 디자인한 티셔츠는 해외 각지에 있는 한세실업의 공장에서 제품으로 만들어진다. 물론 이 티셔츠는 '한세실업'이 아니라 고객 회사 이름을 달고 세상에 나온다.

이용백 한세실업 사장은 "자체 브랜드가 없었던 게 오히려 득이 됐다"고 말했다. 치열한 국내 패션 시장에서 중소기업으로서 유통·마케팅 같은 비용 부담을 감수하며 자체 브랜드로 경쟁하는 무리수를 두기보다 일찌감치 OEM 수출로 눈을 돌린 게 경쟁력으로 작용한 것이다.

OEM이 아니라 ODM입니다

한세실업은 단순 생산만 하는 OEM이 아니라 바이어가 대강의 스타일과 원단 등을 지정해 주면 독자적으로 디자인을 해 샘플을 만든다. 때로는 먼저 디자인을 정해 샘플을 제작한 뒤 바이어에게 제안을 하기도 한다. 제품 생산의 주도권을 가질 수 있는 ODM(제조자디자인생산) 방식으로의 전환을 이미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이 사장은 "'브랜드 판매 방식이 아니니까 고객사 주문대로 대충 만들면 되겠지' 하는 생각이라면 바이어나 고객사의 불합리한 가격 책정, 본전도 안 되는 이익률 등에 휘둘려 말 그대로 하청 OEM 업체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한세실업은 철저한 관리시스템을 갖췄다. 한세실업이 가장 역점을 두는 부분은 연구개발과 디자인 역량 강화. 서울 본사에만 디자이너가 30명 근무 중이다. 김애선 디자인총괄담당 상무는 "대부분의 디자이너가 미국, 영국, 이탈리아 등에서 공부를 했고 현지 근무 경력도 있는 인재들"이라고 말했다. 올 3월에는 뉴욕의 우수 디자이너들을 영입해 뉴욕 맨해튼 브로드웨이에 사무소도 세웠다.
▲ 26일 서울 여의도 한세실업 본사에서 디자이너들이 직접 디자인한 제품을 선보이며 환하게 웃고 있다. /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특성에 맞는 해외 경영

한세실업은 베트남·니카라과·과테말라·중국·인도네시아·캄보디아 등 6개국에 8개 해외현지법인을 설립, 운영하고 있다. 디자인이 한세실업의 차별화된 경쟁력이라면 해외 생산기지는 원가 경쟁력을 유지하는 원동력이다.

한세실업은 해외 공장을 지역별로 특화했다. 손재주가 좋은 인력을 많이 보유한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공장은 바이어의 요구 조건이 까다로운 나이키, 갭, 아메리칸이글 등의 의류를 만들고 있다. 미국과 지리적으로 가깝고 일정량을 무관세로 수출할 수 있는 중남미의 공장은 월마트, 타겟 등 대형마트나 백화점의 제품을 주로 생산한다.

ODM을 통한 해외 경영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김동녕(64) 회장은 1년 중 120일은 해외에 나가 있다. 김 회장은 "해외 경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현지인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아야 하고, 이들에게 인간적인 차원에서 겸손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경기 한파(寒波)도 해외 경영에 치중하는 한세실업에는 호기(好機)가 되고 있다. 글로벌 경기 침체와 환율 상승 효과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것이다. 실제 한세실업의 주 고객사인 월마트의 경우 최근 매출이 오히려 늘어 한세실업에 대한 주문량도 덩달아 크게 늘었다. 또 경쟁력이 없는 다른 OEM 업체들이 불황을 견디지 못하고 도산하는 경우가 늘면서 새 고객사들도 생기고 있다.

ODM

제조업자 개발생산 또는 제조업자 설계생산(Original Design Manufacturing)을 일컫는 말. 제조업체가 보유하고 있는 기술력을 바탕으로 제품을 개발해 유통업체 등에 공급하고, 유통업체는 자사에 맞는 제품을 선택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과는 구별된다. 즉, 주문자의 요구에 따라 단순히 생산만 하는 OEM 방식과 달리, 디자인 등을 자체 개발해서 납품하기 때문에 부가가치가 높다는 장점이 있다.
 
입력 : 2008.11.27 06:38
 
 
 
[② 다다C&C] 챔피언의 머리에서 빛난다 모자, 왕관이 되다
타이거 우즈가 쓰는 '메이드 인 코리아'
 
▲ 세계 1위 스포츠모자 생산업체인 다다C&C 직원들이 27일 서울 역삼동 본사 쇼룸에서 전시용 모자를 들고 활짝 웃고 있다. 조인원 기자 join1@chosun.com
아디다스, 리복, 나이키, 갭, 갤러웨이, 테일러메이드….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다다C&C 본사 10층의 쇼룸에는 전 세계 유명 스포츠업체들의 모자가 모두 전시돼 있다. 타이거 우즈(나이키골프), 세르지오 가르시아(테일러메이드), 하인스 워드(리복), 애니카 소렌스탐(갤러웨이) 같은 유명 스포츠스타가 쓰는 모자 역시 다다C&C 제품이다. 다다C&C는 미국 4대 프로스포츠인 프로야구(MLB), 프로농구(NBA), 프로미식축구리그(NFL), 아이스하키리그(NHL) 소속 120여개 스포츠팀의 공식 모자를 만드는 세계 1위 스포츠모자 생산업체다.

다다C&C가 1년에 생산하는 모자는 5000만개. 한국인 모두 하나씩 쓰고도 남을 수량이다. 다다C&C 박대식 관리본부 이사는 "미국인 개개인이 적어도 한 개 정도는 다다C&C 모자를 갖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말했다. 베트남,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중국에 생산공장을 갖고 있는 다다C&C는 생산량의 95%를 미국을 비롯한 해외에 수출한다. 국내에도 빈폴, 후부, 이랜드 등에 모자를 납품하고 있지만, 자기 브랜드 제품을 따로 두지 않아 일반인에게는 회사 이름이 낯설다.
▲ 타이거 우즈 애니카 소렌스탐 하인스 워드
◆"모자가 돈 된다"… 1년에 5000만개 생산

다다C&C의 모태는 1974년 설립된 무역회사 대도통상이다. 1976년 미국 출장 길에 오른 창업주 박부일(67) 회장은 미국에서는 남녀노소 구분 없이 스포츠 모자를 즐겨 쓰는 것을 보고, "모자가 돈이 되겠다"고 판단, 무역업에서 모자 제조업으로 업종을 전환했다.

스포츠모자 후발주자인 다다C&C가 한 단계 비약한 것은 1990년대. 당시만 해도 모자 앞부분 로고는 염료로 프린트를 하거나 따로 봉제공장에 하청을 주는 업체들이 많았는데, 다다C&C는 당시 대당 1억원이 넘는 컴퓨터 자수기 100대를 구입, 로고를 자수로 새겨 넣었다. 컴퓨터 자수기는 가격이 비싼 대신 까다로운 그림이나 로고도 쉽게 새길 수 있다. 또 자수기를 100대나 갖춰, 바이어(구매담당자)의 요구에 따라 얼마든지 다양한 제품을 신속하게 만들 수 있게 됐다.

때마침 미국 프로 스포츠팀들이 모자 매출을 올리기 위해 그동안 하나뿐이던 공인 모자의 디자인과 색상을 다양화했다. '다품종 소량생산' 체제를 갖춘 다다C&C에 날개를 달아준 격이었다. 미국 4대 스포츠 리그에 모자를 납품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리복, 아디다스 등 유명 스포츠 용품 업체 바이어들도 잇따라 다다C&C에 주문을 넣었다. 다다C&C는 생산량 기준으로 1998년에 세계 1위에 오른 뒤 10년째 선두를 지키고 있다. 지난해 세계시장 점유율은 45%에 달한다.

일반 모자보다 20% 비싸도 잘 팔려

다다C&C 제품 중에는 '플렉스 캡'이란 제품이 있다. 끈을 늘이거나 줄이지 않아도 모자를 쓰는 사람의 머리 크기에 모자 크기가 자동으로 맞춰진다. 원단 소재로 신축성이 뛰어난 스판덱스를 사용한 이 제품은 일반 모자보다 20% 정도 비싼 값에 팔리고 있다. 특허기술팀 정창연 차장은 "미국 업체가 65만 달러의 로열티를 내고 플렉스 캡 기술을 사갔을 정도로 반응이 좋다"고 말했다. 또 모자 본체와 앞의 챙 부분을 하나의 천으로 처리해 디자인을 세련되게 한 제품 역시 특허 등록돼 있다.

"차별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특허기술밖에 없다." 박부일 회장의 평소 지론이다. 다다C&C 본사 직원 중에는 영업팀 다음으로 기술개발팀 인원이 많다. 본사 직원의 25%인 40명이 기술개발팀 소속이며, 이들은 지금껏 488개의 특허를 따냈다.

'아트 퀄리티(art quality)' 역시 작년부터 도입한 차별화의 한 방안이다. 디자인, 영업 소속 직원들을 생산라인의 품질검사에 참여시켜, '감성 품질관리'를 실시하고 있다. 실밥 노출 같은 제품 자체의 흠은 없다 하더라도 소비자의 시각에서 봤을 때 맘에 들지 않으면, 가차없이 불량 처리한다.

가방·니트까지 사업 확장

다다C&C 본사에는 회장을 포함해 5명의 임원이 있다. 그러나 현재 본사를 지키고 있는 임원은 박대식 관리본부 이사 한 명뿐으로 박부일 회장(베트남), 박성배 사장(인도네시아), 박성기 부사장(중국) 등 4명이 해외출장 중이다. 박대식 이사는 "13개 해외법인체마다 법인장이 따로 있지만, 본사 임원의 절반은 늘 해외 생산현장에 나가 있다"고 말했다. 현장경영을 그만큼 중시함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다다C&C는 올해부터 스포츠모자 외에 신사업으로 캐주얼 가방과 니트류 생산을 시작했다. "모자만으로는 10년, 20년 뒤를 보장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다. 작년부터 들어간 신사업 관련 투자규모만 약 300억원. 작년에 1800억 정도이던 회사 매출이 올해는 신규사업 덕분에 50% 이상 늘어난 2800억원으로 예상되고 있다.

내년 매출 목표 역시 올해보다 50% 늘어난 4200억원. 박 이사는 "미국을 비롯한 세계경기가 다소 어려워지더라도 그 정도 충격은 신규사업 진출로 충분히 흡수할 여력이 있다"고 말했다.

 

                                   

 

▲ 미국 등 주요시장에 모자, 가방 등을 수출하는 다다씨엔씨 상품개발팀 직원들이 27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본사를 방문해 보았습니다. /조인원 기자

 

입력 : 2008.11.28 03:33 / 수정 : 2008.11.28 07:20
 
 
 
 
[③ 엠케이 전자] '금(金)실' 좋은 회사

세계 반도체 불황을 꿰매다, 반도체 소재 생산 

'반도체 속 신경' 가느다란 金실 생산
일본도 못만드는 '金銀 와이어'성공
매년 20%씩 성장… 올 매출 4500억
초과이익 20%는 무조건 직원들에게

 

지난달 27일 저녁 7시,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엠케이전자 공장에는 환하게 불이 밝혀져 있었다. 공장을 메운 50여 대의 기계에서는 실타래 같은 장치가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있다. 이 회사 주력상품인 금 본딩 와이어(gold bonding wire)를 뽑아내는 것이다. 금 본딩 와이어는 반도체 제품에서 기판과 실리콘 칩을 연결해 전기 신호를 전달하는 가느다란 금실로, 우리 몸의 신경과 같은 역할을 한다. 손가락 굵기의 금 막대기가 기계를 통과하면 가느다란 금실로 변한다. 금 1g으로 머리카락 5분의 1 굵기의 금실을 250m까지 뽑아내면서도 고열과 충격에 끊어지지 않도록 튼튼하게 만드는 기술이 핵심이다. 이 회사 최상용 사장은 "세계 반도체 시장이 극심한 불황을 겪고 있지만 우리는 다행히 꾸준하게 주문이 들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1982년 설립된 이 회사는 최 사장 말대로 매년 20% 이상 성장하고 있다. 특히 최근 5년간은 세계 시장 평균(8%)을 훨씬 넘어서는 24.2%의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올해 예상 매출은 전년 대비 29%나 증가한 4500억원으로, 세계 시장 점유율 4위를 기록할 전망이다. 이 회사는 '금은 합금 와이어' 같은 신제품을 경쟁업체보다 먼저 시장에 선보이면서 2013년 1위 등극 목표를 현실로 만들어가고 있다.

인재경영과 연구개발이 경쟁력

엠케이전자는 회사 설립 4년 만인 1986년 자체 기술연구소를 설립했다. 국내 반도체기업에 의존하던 당시 중소기업으로서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하지만 엠케이전자는 세계 시장으로 뻗어나가기 위해 자체 연구능력을 키우기로 결정했다. 기술연구소는 생산장비의 대부분을 국산화하는 성과를 올렸고, 이제는 시장을 선도하는 신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국내외에 출원한 핵심 특허만 40여 건에 이른다.

전체 직원 200명 중 연구개발(R&D) 인력은 34명이다. 또 KAIST 등 국내외 8개 대학과 공동개발을 하는 등 매년 전체 투자비용의 30% 정도를 연구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기술연구소 박용진 1팀장은 "새로운 특허를 출원하면 곧바로 보상금을 지급하고, 해당 기술로 인해 향후 매출이 발생하면 추가 인센티브를 주기 때문에 연구원들이 스스로 창의력을 발휘한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또 당초 목표치를 초과하는 이익의 20%를 직원들에게 성과급으로 지급하는 수익배분(profit shari ng) 제도도 운용하고 있다. 중소기업으로서는 파격적인 보상체제다.
▲ 엠케이전자 직원들이 용인공장에서 만든 반도체 핵심재료‘골드 본딩와이어’를 들어 보이고 있다. /이명원 기자 mwlee@chosun.com
◆현장서 아이디어 1000개 쏟아져

엠케이전자의 또 다른 강점은 철저한 제조관리 정책이다. 2002년 삼성전자 출신의 전문경영인이 들어오면서 TPM(종합생산관리) 등 제조혁신 활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또 확실한 보상책을 마련, 직원들의 참여를 유도했다.

모든 제안에 금전적인 보상을 해준 결과, 매년 1000개의 아이디어가 제조현장에서 나왔다. 2003년과 2005년 사이 인력은 8% 증가했지만, 생산성은 60%나 높아지는 성과를 거뒀다. 공정기술팀 이선호 차장은 "10년 전만 해도 생산 단계에서 불량률이 높아 기계 한 대당 한 명이 붙어서 관리해야 했지만 지금은 한 명이 세 대를 맡을 정도로 생산성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지금도 엠케이전자는 120여 개의 제조혁신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기술력만 있으면 불황은 오히려 기회

엠케이전자는 불황에 빠진 반도체 시장을 오히려 기회로 받아들이고 있다. 원가절감에 고심하는 반도체 업체들에 필요한 신제품을 준비했기 때문이다. 지난 9월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 '금은 합금 본딩 와이어'는 저렴한 은을 첨가해 금 본딩 와이어보다 25% 정도 원가를 낮췄으면서도 비슷한 품질을 구현한 제품. 은을 첨가하면 전기전도율이 낮아지고, 고온 고습 환경에서 부식이 일어나는 문제가 발생하지만, 엠케이전자는 2년여의 연구 끝에 금은 합금에 또 다른 비밀 '원소'를 투입하는 방법으로 난관을 극복했다. 금은 합금 제품은 현재 세계 1위 업체인 일본의 다나카도 아직 상용제품을 내놓지 못했다. 최 사장은 "한국은 반도체는 세계 1위지만 반도체 소재분야는 취약한 게 사실"이라며 "반도체 소재 분야 세계 1등 업체가 돼서 국내 반도체 기업의 발전에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입력 : 2008.12.01 03:20
 
 
 
 
 
[④ 오로라월드] 캐릭터 완구의 명품
봉제인형, 디자인 입고 날았다
선진국 시장 철저히 분석… 미국서 브랜드 인지도 3위
디자인 인력이 전체 40%… 글로벌 네트워크도 탄탄
 
▲ ‘오로라월드’직원들이 서울 대치동 본사의‘쇼룸’에서 자신들이 디자인한 다양한 캐릭터 인형들을 보여주며 웃고 있다. 이명원 기자 mwlee@chosun.com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테헤란로에 있는 한 대형 빌딩. 강남 한복판에 위치한 이 빌딩 4층에서는 '드르륵 드르륵' 재봉틀 돌아가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이곳은 캐릭터 완구 및 선물용품 디자인 전문 기업 오로라월드의 디자인실. 한 곳에서는 디자이너들이 종이 위에 제품 디자인을 그리고 있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그 디자인을 바탕으로 샘플 제품을 만들고 있었다. 이 회사의 김용연 경영기획실장은 "이 샘플 제품을 바탕으로 고쳐야 할 부분을 보완한다"며 "모든 과정을 통과한 디자인은 해외 현지 공장에서 생산된 뒤 전 세계로 팔려 나간다"고 설명했다.

비슷한 시각, 이 사무실 바로 위층에 있는 '오로라월드'의 쇼룸. 오로라월드에서 생산한 수백 종의 인형이 전시돼 있는 쇼룸의 한 곳에서 독일의 한 유통업체 바이어가 내년에 판매할 제품 상담과 주문을 하고 있었다. 세계적인 불황이지만, 이곳에는 독일은 물론 프랑스, 일본 등에서 온 대형 바이어들의 방문이 끊이질 않았다.

 
디자인과 브랜드 파워, 글로벌 네트워크 삼박자 갖춰

'오로라월드'는 국내에서는 아직 이름이 낯선 회사지만, 미국 시장에서 브랜드 인지도 3위를 차지할 정도의 '유명 회사'이다. 오로라월드의 '팬시팔스'는 가방 안에 동물 인형을 넣은 콘셉트의 제품으로 미국과 유럽 전역에서 큰 인기를 모아 전 세계적으로 3000만 개가 팔렸다. 이 회사는 캐릭터 완구를 제조, 전체 생산량의 95%를 해외에 수출한다. 올해 매출은 환율 상승으로 당초 전망치를 16%나 웃도는 565억원을 기록할 전망이다. 홍기선 대표는 "오로라월드가 전 세계에 제품을 판매할 수 있었던 핵심 원동력은 디자인과 브랜드 파워, 그리고 글로벌 네트워크에 있다"고 말했다.

이 회사가 설립된 1981년만 하더라도 국내 봉제완구 업체의 상황은 열악했다. 홍 대표는 "하지만 국민소득 1만 달러 이상의 선진국일수록 인형에 대한 수요가 높다고 판단, 미국, EU, 일본 등 선진국 시장을 철저히 분석해서 제품 개발에 힘을 기울였다"고 말했다. 오로라월드도 처음에는 OEM(주문자 상표부착 생산)방식으로 제품을 생산했지만, 주문자에게 종속적인 OEM방식의 한계를 깨닫고, 자체 브랜드를 개발해 판매하는 방식으로 전략을 바꿨다. 이 덕분에 국내 완구업체들이 OEM방식에 의존하다 경쟁력을 잃고 자취를 감춘 것과 달리, 오로라월드는 현재 전 세계에 판매되는 제품의 85%를 자체 브랜드로 판매하고 있다.

이러한 성공의 바탕에는 디자인 연구소가 있다. 서울 대치동 본사에 있는 디자인 연구소에는 1년에 네 차례 전 세계에 있는 '오로라월드' 디자인 담당자들이 모두 모여 '제품 개발 회의'를 한다. 이 회의에는 미국, 영국, 독일, 일본, 홍콩 등에 있는 리서치센터의 전문가들이 모여 지역별 생활 방식과 시장 트렌드를 분석, 새로운 개념의 디자인 상품을 기획한다. 여기서 나온 제품은 중국, 인도네시아의 디자인 개발 센터를 거쳐 새로운 디자인 패턴, 신소재 등과 접목된다. 오로라월드에서는 디자인 연구 인력이 전체 직원의 40%를 차지할 정도. 이러한 '디자인의 힘'을 바탕으로 60개의 자체 캐릭터 브랜드를 만들어 5만여 종의 제품을 시장에 내놓고 있다.

"2011년까지 세계시장 점유율 10% 달성"

오로라월드는 기본적으로 고급 캐릭터 브랜드를 지향한다. 따라서 고객층과 가격대에 따라 브랜드를 다르게 가져가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예를 들어 오로라 클래식, 오로라 베이비 등 비싼 브랜드에는 '오로라'라는 이름을 노출시키지만, 대형마트나 놀이공원에서 판매하는 중저가 제품에는 별도의 브랜드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오로라=고급 캐릭터 제품'이라는 브랜드 파워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오로라월드는 수출 위주의 기업이다 보니, 다국적 경영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쏟고 있다. 이 회사는 현재 미국 LA에 있는 미주 판매법인은 물론, 영국 런던, 홍콩에도 별도의 판매법인을 두고 있다. 또 독일 등 전 세계 곳곳에 12개의 상설전시장도 갖고 있다.

'글로벌 네트워크'가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현지 법인에 권한도 많이 넘겨줬다. 오로라월드가 미국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세일즈 랩(독립 판매 대행사)'이 장악하고 있는 미국 유통시장의 특수성을 파악, 현지 시장에 정통한 현지 '세일즈 랩'을 적극 이용하는 마케팅 전략이 효과를 발휘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지리와 문화적 습관을 잘 알고 있으며 지역별로 유력한 시장 네트워크를 보유한 '세일즈 랩'을 활용해, 거대한 미국 시장에 거미줄 같은 판매망을 형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홍 대표는 "최근에는 친환경 소재를 이용한 인형제품 개발 등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2011년까지 세계시장 점유율 10%를 달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 캐릭터완구 전문기업 오로라월드가 자사 캐릭터 완구들을 소개한다.. 오로라월드는 미국브랜드 인지도 3위로 매출의 95%를 해외애서 올리고있다. /이명원 기자

 

 

 

 

 

 

[⑤ 에이테크솔루션] 특수금형 기술력 탄탄… "불황은 없다" 

금형업체, 전자·자동차용 고부가가치 금형 만들어
2002년부터 매출의 10%를 R&D에 투자
올 매출 1200억원 전망… 작년보다 20% 늘어 

 

 

1일 낮 경기도 화성시의 금형업체 에이테크솔루션 공장을 들어서자 전자·자동차 부품용 금형을 만드는 기계들의 굉음으로 귀가 먹먹했다. 기계들이 바쁘게 쇠를 쪼개고 뚫어내고, 직원들은 쇳조각을 조립해 2m 남짓한 크기의 금형을 조립해냈다. 공장 한편에는 한 개당 수억원짜리 금형이 줄지어 있었다.

금형이란 플라스틱이나 금속을 액체 상태로 흘려 넣어 각종 부품을 제조하는 금속틀. 세계 금형업계는 최근 경기 침체로 고전 중이지만, 에이테크솔루션은 예외다. 올해 매출 전망만 약1200억원으로 2002년(541억원)에 비해 두 배가 넘고, 지난해(1019억원)보다 20% 가까이 늘었다. 불황으로 위축된 금형업계로서는 이례적이다. 내년에는 매출 1400억원이 목표다. 이범경(47) 공장장(상무)은 "일거리가 쏟아져 오전 8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잔업을 하며 소화해내고 있다"고 말했다.

▲ 에이테크솔루션 임직원들이 1일 경기도 화성에 있는 본사 공장에서 자사 금형으로 제작된 LCD TV 외곽 틀을 들어 보이며, 경제 침체 극복을 다짐하는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화성=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선택과 집중' 역(逆)발상으로 이뤄낸 성장

에이테크솔루션의 주력 제품은 '특수 금형'이다. 특수 금형이란 일반 부품이 아니라 특수한 전자·자동차용 부품을 제작하기 위해 주문 제작되는 고부가가치 금형을 말한다. 에이테크솔루션이 만드는 1000여 종의 금형 중 70% 정도가 특수 금형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삼성전자의 주력 제품인 '크리스털 로즈' 디자인 TV 금형. '크리스털 로즈'는 붉으면서도 투명한 이중 색채 디자인으로, 올해 세계적으로 200만 대가 팔려나갔다. 이 제품 외형을 만드는 게 에이테크솔루션의 금형이다. 두 개의 플라스틱 패널을 1.5m에 20㎛(마이크로미터·100만분의 1m) 오차로 덧대, 경쟁사가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신비한 색깔을 만들어낸다.

이 특수 금형 기술 덕분에 에이테크솔루션은 글로벌 경기 침체에도 뻗어가고 있다. 배경은 어려울수록 집중 투자한다는 '역발상'에 있다. 유영목 사장은 "경기가 무너질 때가 오히려 기회"라며 "투자를 통해 적극적으로 기술을 리드해(앞서)나가면, 반드시 보답이 온다"고 말했다.

실제 에이테크솔루션은 경기가 가라앉았던 2001년 창립 초기부터 수십억원을 기술 개발과 최신 설비에 투자해왔다. 2002년부터 이 회사의 연구개발(R&D)비는 매출의 10%에 이른다. 다른 회사와 똑같은 일반 금형을 생산하면 비전이 없다는 절박함이 원동력이었다. 회사가 적자를 낼 때도 흔들림이 없었다. 전체 사원의 25%가 R&D에 매달려 주말에도 평일처럼 일했다.

이렇게 쌓인 기술력은 2004년 호황이 되면서 본격 꽃을 피웠다. 각종 금형을 '빠르게 잘 만든다'는 입소문이 나자, 삼성전자는 물론, 현대자동차와 일본·미국의 유수 자동차 기업들이 잇달아 부품용 금형을 주문하고 나섰다.

◆"어려울수록 협력해 불황 뚫는다"

에이테크솔루션은 이번 세계 경기 침체도 크게 두렵지 않다는 반응이다. 유 사장은 "위기로 말하면 2001년이 더 심했다"고 말했다. 에이테크솔루션이 2001년 삼성전자에서 분사했을 당시, 금형산업은 '디지털' 열풍 속에 저성장·저수익 사업으로 통했었다.

하지만 유 사장과 180여 명의 직원들은 과감히 분사를 선택했고 지분의 35%를 직원들이 갖는 종업원 지주회사를 만들었다. '에이테크솔루션'이라는 이름도 직원들에게 직접 공모해 지은 것이다. 직원들 스스로 '액트 나우(Act Now)'라는 공정개선·비용절감 활동을 펼쳐 매년 20억~30억원을 절감해왔다. 회사 측도 과감한 보상과 임금 인상으로 보답했다. 이 상무는 "10년 이상 함께 일해온 직원들이 3분의 1"이라고 말했다.

대기업과의 협력 제도도 적극 활용하고 있다. '크리스털 로즈' 금형 개발 당시 삼성전자로부터 150여억원의 금형가공설비를 지원받았다. 유 사장은 "금형은 장치 산업이면서도 속도와 손놀림이 중요해 한국인에게 어울리는 산업"이라며 "직원들과 더 합심해 경쟁업체와 기술 격차를 벌려 우리나라의 전자·자동차용 금형기술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올려놓겠다"고 말했다.


 

  • ▲ 경기도 화성에 자리한 금형업체 '에이테크솔루션'은 대기업에서 분사하여 설립한 업체로 출발하여 독자적인 고부가가치의 금형 생산을 거듭하면서 현재 나라를 흔들고 있는 전방위적 불황속에서도 대한민국 희망기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진한 기자
 
 

 

[⑥ 디지텍시스템스] 터치스크린 제조업체

새로운 시장 남보다 한발 먼저 '터치'

내비게이터 화면에 쓰이는 얇은 필름 개발
휴대전화용과 슬롯머신용으로 제품 다각화
매출·생산 국내1위… 올해 매출 480억원 예상

 

3일 찾아간 경기도 화성의 터치스크린 제조업체 디지텍시스템스 생산라인은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3000㎡ 넓이의 생산라인을 채운 최신 가공 장비들은 쉴새없이 움직이고 있었고, 커다란 필름을 잘개 쪼갠 뒤 회로를 입히는 공정 요소요소마다 직원들이 분주하게 작업을 하고 있었다. 디지텍 김용만 팀장은 "주문이 많아 요즘도 밤에도 멈추지 않고 공장을 돌리는 날이 많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터치스크린 분야에서 매출·생산량 모두 국내 1위를 달리는 업체. 2004년 62억원이었던 매출이 지난해 420억원까지 오를 만큼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올해 역시 글로벌 금융 위기에도 불구하고 480억원 정도의 매출을 예상하고 있다. 디지텍 이환용(46) 사장은 "전자제품 시장도 불황을 맞고 있지만, 차별화된 기술과 한 발 앞선 전략이 있으면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터치스크린(touch screen)이란 최신 휴대폰이나 자동차용 내비게이터(길안내장치)의 화면을 만드는데 쓰이는 얇은 필름을 말한다. 단순한 제품 같지만 사람 손가락 끝의 촉각을 정확히 인지, 오차 없이 기계를 작동시켜야 하기 때문에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한다.

내비게이터 바람 타고 알짜 성장

이 회사의 매출 대비 영업이익률은 2006년과 2007년 모두 30%를 웃돌았다. 이런 가파른 성장은 이 사장이 일찍부터 새로운 시장 발굴을 위해 힘쓴 결과. 세계적 화학업체 3M의 자회사 한국 지사장으로 일하던 이 사장은 2000년 소형 단말기(휴대폰, 내비게이터, 동영상재생단말기)용 터치스크린 시장 가능성을 높게 보고 창업에 나섰다. 첫 타깃은 내비게이터 시장. 하지만 너무 앞서간 탓인지 시장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2003년까지 4년 내리 적자를 맛보기도 했다.


그 와중에도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는 아끼지 않았다. 이 사장은 "생산직원까지 합쳐도 30명이 채 안 되던 시절에도 연구개발 인력은 10명 이상으로 꾸준히 유지했다"고 말했다. 내비게이터 시장은 2004년부터 터지기 시작했다. 전 세계 호황으로 자동차 판매가 급증했고, 국내외 소비자들 사이에 효용성이 입소문으로 퍼졌다. 내비게이터 세계 1위인 톰톰과 국내 1위 팅크웨어가 앞다투어 디지텍 제품을 사갔다. 회사 매출은 3년 사이 7배가량 늘었고, 지난해 코스닥 입성에도 성공했다.

▲ ㈜디지텍시스템스 이환용 대표이사(가운데)와 사원들이 3일 오후 경기도 화성 공장의 생산 라인에서 터치스크린용 패널을 꺼내 들고 활짝 웃고 있다. /김용국 기자 young@chosun.com
휴대폰과 슬롯머신에서 제2돌풍 일으킨다

상장을 통해 확보된 자금은 새로운 투자에 활용했다. 작년에는 경기도 화성에 6500㎡ 규모, 올해 5월에는 파주에 7000㎡규모의 대규모 생산 공장을 건립했다. 2006년부턴 새로운 시장을 찾았다. 내비게이터가 고속 성장하는 만큼 한계도 빨리 맞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래서 준비한 상품이 휴대폰용 터치스크린. 당시만 하더라도 드물던 터치스크린 휴대폰은 요즘엔 일반적 추세로 자리 잡을 만큼 빠르게 성장했다. 디지텍도 올해 10월부터 삼성전자에 납품을 시작했다.

이 사장이 기대를 거는 또 다른 분야는 카지노에서 쓰이는 슬롯머신용 터치스크린. 슬롯머신의 경우 24시간 가동하는 제품의 특성상 약 2년마다 교체 수요가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경기 침체로 내비게이터 시장은 올 4분기 들어 주문량이 작년 같은 기간의 5분의 1이하로 떨어질 만큼 가파르게 감소하고 있다. 디지텍 매출 구성은 2006년 만 하더라도 내비게이터용이 90% 가까이 차지했지만, 올해는 이 비중이 60% 정도로 내려가고, 대신 슬롯머신용(20%)과 휴대폰용(10%) 비중이 높아진다.

디지텍은 이익 초과 달성분을 직원들과 나누는 이익 공유 제도도 도입, 지난해는 6억5000만원을, 올해는 3분기까지 6억원을 200 명 직원들에게 성과급으로 지급했다. 이 사장은 "직원들을 사업 파트너로 여겼더니, 생산라인에서도 직원들이 스스로 품질 개선을 위해 노력한다"고 자랑했다.

▲ (주)디지텍시스템스 직원들이 먼지 하나없는 청정 지역으로 관리 되는 생산라인에서 정밀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김용국 기자

 
입력 : 2008.12.04 03:25 / 수정 : 2008.12.04 07:22
 
 
 
 
[⑦ 카스] 전자저울 제조업체
기계보다 정확한 손기술로 세계를 잰다

0.03㎜두께 핵심 부품 오차없이 제자리에 붙여
남미·아프리카 등 금융위기 영향 덜 받은 곳 공략
올 매출, 작년보다 17% 증가한 850억원 이를 듯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에 있는 전자저울 제조업체 카스(CAS) 공장. 클린룸(clean room·미세 먼지까지 제거한 작업실)에서 흰색 방진복을 입은 직원들이 핀셋으로 가로·세로 1㎝, 두께 0.03㎜짜리 무게 감지 센서를 알루미늄으로 된 부품 위에 붙이고 있었다. 전자저울에 들어가는 핵심 부품인 '로드 셀(load cell·무게 측정 때 쓰이는 소자)'을 만드는 공정이다. 센서를 부착하는 위치에 조금이라도 오차가 생기면, 저울로 정확한 무게를 잴 수 없기 때문에 이 공정은 경력 20년이 넘는 숙련공이 맡고 있다.

김준락 차장은 "기계보다 사람 손이 더 정확하다"며 "카스가 국내 전자저울 시장의 70%, 세계 시장의 20%를 차지하는 비결은 베테랑 직원들의 '손끝' 덕분"이라고 말했다. 공장 안에는 '우리가 세계의 무게를 단다(We weigh the world)'라는 슬로건이 곳곳에 걸려 있었다.

▲ 전자저울 전문업체‘카스’의 경기도 양주 공장에서 직원들이 환하게 웃고 있다. 이 회사는 남미₩아프리카 등 세계 금융위기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은 지역을 공략한 결 과 올해 매출이 작년보다 17% 증가할 전망이다. 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국내 점유율 70%, 세계 점유율 20%

카스가 만드는 전자저울은 수퍼마켓이나 정육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제품부터 가정용 체중계, 고철 무게를 재는 산업용 저울 등 1000여 개에 이른다. 이마트 식품매장에서도 카스 제품을 쓴다. 이 회사가 매월 만드는 전자저울은 평균 5만 개 정도.

이 회사는 작년보다 17% 증가한 850억원의 매출을 올해 예상한다. 김기환 총무팀장은 "1987년부터 이어온 '흑자 경영'을 올해도 자신한다"고 말했다. 카스는 내년에는 매출이 1000억원으로 늘 것으로 보고 있다. 매출의 55%를 차지하는 수출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불경기에도 수출이 느는 이유를 묻자, 김동진(金東珍) 사장은 "상대적으로 금융위기의 영향을 덜 받은 지역을 공략한 결과"라고 말했다.

"저울 제품은 수퍼마켓·정육점을 비롯한 소매상이 주 고객입니다. 경기에 민감할 수밖에요. 올 초 미국과 유럽 경기가 좋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을 하고 아프리카·남미 등 제3세계 시장을 집중 공략했습니다."

올 초 파키스탄에 법인을 세웠고 콜롬비아·볼리비아 등 남미와 케냐·수단·나이지리아 같은 아프리카로 수출 지역을 늘렸다. 중남미와 아프리카 시장 모두 올해 10~15% 정도 매출 신장을 예상한다.

이런 상승세는 중소기업답지 않게 글로벌 네트워크를 잘 활용한 덕분이 크다. 13개 해외 법인을 중심으로 세계 150여 개국에서 제품을 파는 카스는 매년 1월 해외 현지법인 관계자들을 한국으로 불러 전략회의를 연다.

전자저울로만 20년 '외길'

카스는 1997년 에밀레종을 위에서 들어올리는 방식으로 무게(18.9t)를 재어 화제를 모았다. 국내 전자저울 시장의 개척자 격인 이 회사는 20년 넘게 '전자저울'이란 한 우물을 파왔다.

김동진 사장이 1983년 무게를 재는 핵심 부품을 개발, 85년부터 저울 생산을 시작했다. 87년부터는 포르투갈을 시작으로 수출에 본격 나섰다. 첫 수출국인 포르투갈의 경우 당시 '전자저울' 관련 법규가 없어 1년 반 가까이 포트투갈 정부 공무원을 끈질기게 설득하는 노력을 쏟았다. 저울은 같은 제품이더라도 중력과 지형, 지하자원 분포에 따라 다른 측정 결과가 나올 수 있다. 도량형과 화폐 단위 등도 각국별로 맞추어야 한다. 카스는 매년 전체 매출의 10% 정도를 R&D(연구·개발)에 투입하고 있다.

카스는 두 가지 단기 목표를 세웠다. 첫째는 중국 시장 공략. 올해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중국 정부의 재래시장 개선작업에 카스가 저울 공급자로 선정됐는데, 내년에는 중국내수 시장을 본격 공략한다는 것. 또 하나는 항공우주기술 개발 등에 쓰이는 초정밀저울 분야 진출이다. 회사 관계자는 "지금까지 쌓은 기술을 잘 활용하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로드 셀(load cell)

전자저울에 들어가는 핵심 부품으로 금속으로 만들었다. 로드 셀이 무게를 받으면 늘어나거나 휘어지는데, 이 변형되는 양을 컴퓨터로 측정해 무게로 바꿔 다시 숫자로 나타낸다.


 

입력 : 2008.12.08 03:35
 
 
 
 
[⑧ 누리텔레콤] 원격검침 시스템 개발
"외국 경쟁사보다 2년 앞선 기술력이 밑천"

전기·수도 사용량 무선으로 검침해 통보
스웨덴 등 11개국 진출… 올 매출 44% 늘어
그린 IT 시대… 2016년 시장규모 3조원 될듯

 

"중소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연구개발(R&D)에서 경쟁력을 가져야 합니다. 자금·마케팅도 중요하겠지만 기술력이 떨어지는 순간, 결과는 뻔합니다."

누리텔레콤의 조송만(48) 사장은 지난 10여 년간 원격검침 한 분야만 파왔다. 그 결과 올해 이 기술을 적용한 시스템을 150억원어치 수출하며 외국에서 더 알아주는 기업이 됐다. 원격검침이란 빌딩과 집집마다 전기·가스·수도의 실시간 사용량을 무선(無線)으로 한전·도시가스 등에 알려주는 시스템을 말한다. 전기 사용량 확인을 위해 일일이 가가호호 검침하러 다닐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서울 가산디지털단지 본사에서 만난 조 사장은 "원격검침이란 거대한 세계 시장이 열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 회사가 거둔 올해 매출액은 522억원(예상치)으로 작년보다 44%나 늘었다. 매출액의 절반 정도는 원격검침 분야에서다. 경기불황이란 말이 무색한 것이다.

유럽·미국 등에서 시장 팽창

이 회사는 지난해부터 스웨덴 제2의 도시인 고센버그의 27만2000가구를 대상으로 원격검침 시스템을 구축했다. 스웨덴 전력회사인 예테보리 에네르기사(社)로부터 따낸 계약이었다. 조 사장은 해외에서 이 기술이 각광받는 이유와 관련, "스웨덴·미국·호주 등에서는 에너지 절약을 위해 시간대별 차등 전력요금제를 입법화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전력회사는 빌딩과 가정의 시간대별 전기사용량을 알아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원격검침 시스템을 도입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조 사장은 "도시 전체의 에너지 사용을 줄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그린 IT(정보기술)'인 셈"이라고 했다.

누리텔레콤은 스웨덴을 포함, 노르웨이·스페인·태국·이집트·호주 등 전 세계 11개국에서 사업을 벌이고 있다. 한국에서는 2000년부터 전국 공장·빌딩 등 14만 호에 이 시스템을 구축했다.
▲ 누리텔레콤 조송만(가운데) 대표와 회사 임직원들이 서울 금천구 가산디지털단지 내 본사에서 원격검침 모뎀을 들어 보이고 있다. 이 회사는 이 시스템으로 150억원 수출을 기록했다. /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외국 경쟁사보다 기술력 2년 정도 앞서

한국의 작은 기업이 전 세계 시장에서 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조 사장은 "외국 경쟁사보다 2년 정도 앞선 기술력이 비결"이라고 했다. 조 사장 자신도 대우통신의 엔지니어 출신이다. 1992년 회사를 나와 웹브라우저 같은 통신소프트웨어를 개발하다가 97년부터 한전에서 원격검침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을 보고 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2000년 CDMA(코드분할다중접속) 이동통신망을 이용한 원격검침 시스템에 이어 2003년 근거리 무선 통신규격 중 하나인 지그비 기술을 이용한 현재 시스템을 내놓았다.

난관도 많았다. "가장 큰 어려움은 해외에서 섣불리 한국의 자그마한 회사 제품을 사용하려 하지 않았던 점입니다."

2002년부터 4년 연속 적자를 냈다. 조 사장은 "그때 난생처음 한강 다리에 가서 자살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했다"고 말했다. 이 기간에도 그는 연구개발비를 쏟아 붓고, 70~80명의 연구개발 인력을 그대로 유지하며 승부를 걸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2005년 태국에서 시범사업을 따내자 노르웨이, 스웨덴 등에서 봇물처럼 계약이 터졌다. 현재는 글로벌 기업인 미국 GE사와 파트너십을 추진할 정도로 글로벌 강자로 자리잡았다. 조 사장은 "2016년까지 전 세계 원격검침 시장규모가 3조원으로 커질 것"이라며 "앞으로도 국내 시장만 바라보지 않겠다"고 말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자도 '그린 IT'를 화두로 삼고 있어요. 원격검침 같은 그린 IT 분야에서 우리가 얼마나 뻗어나갈지 지켜봐 주십시오."
  • ▲ 가스,수도의 실시간 사용량을 무선으로 알려주는 원격검침시스템 개발업체 누리텔레콤. /이진한 기자
입력 : 2008.12.12 06:48 / 수정 : 2008.12.12 07:55
 
 
 

[⑨  대유신소재] 자동차 스티어링휠 제조

노사가 머리 맞댔더니 생산성 두 배로

사내 아이디어 통해 불량률 제로에 도전
"노사 갈등은 딴 나라 얘기" 이직률 1.5% 불과

 

"자동차 스티어링휠(steering wheel·운전대)은 아주 섬세한 부품입니다. 빵 찍어내듯 나오는 게 아닙니다. 고도의 기술력과 품질관리 능력이 필요해요."

대유신소재 생산라인에서 만난 태성광 생산팀장은 스티어링휠의 생산 과정을 신이 나서 설명했다. 조립라인 한쪽에 멈춰서더니 "이 자동화 공정은 100% 직원들 아이디어로 나온 것인데, 이 덕분에 해당 공정 생산성이 2배 이상 늘었다"며 자랑스러워 했다.

경기도 화성시 율암리에 위치한 대유신소재 화성공장은 현대·기아차, GM대우 등의 15개 차종에 스티어링휠을 공급한다. 국내 전체 물량의 51%를 차지해 점유율 1위다.

대유신소재는 1967년 설립된 뒤 처음엔 알로이휠(alloy wheel·타이어와 차축을 연결하는 알루미늄 합금 소재의 원통형 부품)에만 주력하다가 2001년부터 스티어링휠 쪽으로 사업을 다변화했다. 2001년 30억원에 불과했던 전체 매출은 작년 1527억원으로 해마다 크게 늘었다. 수출액도 2002년 2500만달러에서 올해는 1억1080만달러로 급증했다. 종업원 수는 220여명에 불과해 1명당 생산성은 업계 최고 수준이다.

구매·품질 담당 김상규 상무는 "끊임없이 기술 개발하고 공정을 개선해서 품질·가격 경쟁력을 높인 것밖에 없다"고 말했다.
▲ 대유신소재 생산라인에서 박용길 사장과 직원들이 스티어링휠 등 생산된 제품을 들고 활짝 웃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김연옥 사원, 이혁종 사원, 박용길 사장, 백현정 사원, 한재성 사원, 뒷줄 왼쪽부터 옥인영 사원, 조창완 조장, 김대식 과장. /화성=김용국 기자 young@chosun.com
◆현장에서 개선 아이디어 쏟아진다

대유신소재는 임금을 줄이는 대신 다양한 공정 개선 아이디어를 통해 생산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경쟁력을 키워가고 있다. 생산팀의 조인석(41) 반장은 "올해 공정 개선 제안을 통해 생산성이 지속적으로 올라가고 있다"며 "내년부터는 개선 제안 활동이 더 활성화되도록 회사가 직원의 자기계발 활동을 적극 지원한다고 들었다"고 했다.

대유신소재에서는 직원들끼리 원가절감 소모임을 상시 운영하고, 개선 제안 발표회도 매월 연다. 가장 뛰어난 아이디어에는 500만원의 상금을 준다. 소모임을 시작한 2006년에는 제안건수가 890건이었지만, 작년에는 1017건, 올해는 2300여건이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사내 아이디어를 통해 불량률도 크게 낮췄다. 2004년에는 불량률이 100만개당 90개였지만, 올해는 100만개당 1개 이하 수준으로 '불량제로'에 도전하고 있다.
◆경영진·현장직 사이에'벽'이 없다

대유신소재의 박용길 사장과 주요 간부들은 매일 아침 6시30분에 출근, 7시부터 공장라인을 둘러본다. 밤 사이 근무한 야간조 일이 끝날 무렵이다. 이때 사장은 라인을 돌면서 직원들 이름을 일일이 부르고 등을 두드리며 "수고했다"는 말을 잊지 않는다.

생산팀 성형반장 김명수(38)씨는 "작업자들과 사무실 사람들이 매일 같이 만나고 1년에 2번 열리는 체육대회 때도 사장님부터 말단직원까지 모두 나와 즐긴다"며 "첫 직장으로 들어와 10년간 일해 온 것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이런 노사화합 분위기 때문인지 이직률은 2003년 5.8% 수준에서 작년에는 1.5% 수준으로 떨어져 업계 최저 수준이다. 화성공장에는 노조 없이 정기 노사협의회를 통해 주요 안건을 논의한다. 노사갈등·파업은 딴 나라 얘기라고 종업원들은 전했다. 박용길 사장은 "모든 직원들에게 회사 경영상황을 솔직하게 알리고 위기나 기회에 함께 대처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고 있다"고 강조했다.

◆'앞으로' 먹고살 거리를 고민

대유신소재는 지금까지의 성과에 만족하지 않고, 앞으로 성장할 수 있는 분야를 끊임없이 찾고 있다. 기술개발 없이는 지속 성장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알루미늄에 탄소나노튜브를 입힌 고강도·경량 소재 사업을 시작한 것도 그 때문이다. 전 세계 알루미늄 시장은 600조원 규모. 알루미늄의 단점은 '약하다'는 것인데 이를 보완하면 무한한 시장이 열릴 수 있다는 것. 2006년부터 성균관대 이영희 교수팀과 함께 석·박사급 10여명으로 구성된 나노복합체 연구소를 설립, 첨단기술과 생산기술을 접목해 왔다. 올해는 80억원, 2010년까지 1800억원 매출을 예상하고 있다. 제조·스마트알루미늄 담당 백성식 상무는 "휴대폰 케이스, 송전탑 알루미늄 전선 대체용, 또 엔진·차체 부품 등 경량화되면서도 강도가 필요한 분야에 다양하게 쓰일 수 있기 때문에 전망이 매우 밝다"고 했다.
  • ▲ 불항속에서도 야간작업을 하며 어느때 보다 바쁘게 일하고 있는 대유신소재의 생산 라인에서 근로자들이 제품을 만들고 있다. 이같은 결과는 끝없는 기술력향상과 근로자와 경영진의 화합등 으로 얻어 낸 결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