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이런 날이 있습니다 - 이채
살다 보면 사는 일이 쓸쓸해서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날이 있습니다
인적이 드문 산도 좋고
갈매기와 구름만 오가는 섬도 좋고
현실과 멀면 멀수록 좋은 그곳으로
복잡한 생각, 복잡한 세상을
잠시 벗어나고 싶은 날이 있습니다
살다 보면 사람이 싫어져서
회의가 오고 염증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
사랑과 믿음만큼 소중한 것이 없음에도
그것이 금이 가고 쉽게 무너질 때
가슴엔 침묵의 강이 생기고
고독의 강물이 흘러
사는 일이 서글퍼지는 날이 있습니다
우리 사는 이 땅이
미움의 땅이라면 꽃은 피지 않으련만
날마다 커가는 나무가
불신의 나무라면 열매는 맺히지 않으련만
꽃처럼 나무처럼 그렇게 살고자 해도
생각처럼 잘 되지 않아 속상한 날이 있습니다
살다 보면 부질없는 욕심으로
초라한 자신이 미워지고 슬퍼지고
오늘이 힘들어 울고 싶은 날도 있습니다
가장 영리하면서도 가장 어리석은 것이
어쩌면 사람이 아니던가요
세상의 주름은 사람이 만들고
사람의 주름은 세월이 만들 때
문득 사는 일이 허무해지는 날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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